사진=서울 중구 제공 한때 한국인의 일상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던 대중목욕탕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인구 감소, 고령화, 난방비 상승 등 다양한 원인이 맞물리면서 대중목욕탕은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 이는 목욕을 넘어 주민들이 모여 교류하고, 피로를 풀며 휴식을 취하는 공동체적 쉼터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며, 대중목욕탕의 폐업은 지역 사회의 또 다른 소외를 의미한다.
대중목욕탕의 감소는 단순한 일시적 변화가 아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8월 현재 전국에 영업 중인 목욕장업소는 5,785개로 2003년 9,919개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인구가 적고 고령화가 심화된 군 단위 지역의 경우 대중목욕탕 감소 속도는 더욱 빠르다. 목욕탕이 필수적인 위생시설로서만이 아니라, 주민들 간의 중요한 사회적 교류 공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감소는 단순한 상업적 문제를 넘어서 지역 사회의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대중목욕탕 감소의 직격타를 맞고 있다. 충북 보은군의 경우, 과거 10개의 대중목욕탕이 있었지만 현재는 절반인 5곳만 남았다. 이 중 상당수는 여름철에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 인구 감소는 목욕탕 수요 감소로 이어지며, 운영비 충당이 어려워진 목욕탕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보은군의 인구는 최근 10년간 약 3,500명이 줄어든 3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청년층의 유출이 지속되면서 목욕탕을 찾는 가족 단위 이용객이 줄었고, 남아 있는 고령층만으로는 운영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중목욕탕이 사라지면, 고령층과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보은군 수한면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목욕탕을 가기 위해 자가용을 이용해도 10분이 걸리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왕복 2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의 경우, 목욕탕을 이용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불편함을 넘어서 위생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지역 사회의 복지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작은목욕탕' 또는 '마을목욕탕' 같은 소규모 공공목욕시설을 통해 주민들의 목욕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작은목욕탕은 주로 면 단위 지역이나 마을회관에 설치되며, 저렴한 이용료로 주민들이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충북 보은군은 수한면을 제외한 8개 면에서 작은목욕탕을 운영 중이다.
이 작은목욕탕들은 단순한 위생 공간을 넘어 주민들의 교류와 쉼터 역할을 한다. 고령층 주민들은 이곳에서 씻고, 마을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적 유대감을 쌓는다. 예를 들어, 삼승면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집에서 씻으면 씻는 것 같지 않고 불편하지만, 작은목욕탕에서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씻을 수 있어 좋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또한 작은목욕탕은 난방비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특히 겨울철 난방비 상승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는 작은목욕탕이 경제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작은목욕탕이 늘어나면서도 운영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보은군 사직리에 위치한 작은목욕탕은 군의 운영비 지원 없이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중이지만,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운영비 충당을 위해 이용료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한 달에 20만 원 가까이 되는 난방비와 수리비를 마을에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설 관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작은목욕탕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또한 작은목욕탕이 특정 마을에만 설치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도 발생할 수 있다. 작은마을에 목욕탕이 한정되다 보니, 외부인들이 몰려들어 시설이 과부하되거나, 마을 주민들과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작은목욕탕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수질 관리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시설 관리와 관련된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운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작은목욕탕이 늘어나고 있지만, 읍내 대중목욕탕 역시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보은군과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대중목욕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읍내 대중목욕탕은 노년층뿐만 아니라 대규모 행사나 축제 등으로 일시적으로 유입되는 외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이다. 예를 들어, 보은군에서는 유소년 체육 대회나 대추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이때 대중목욕탕은 행사 참가자들에게도 필수적인 시설로 활용된다.
대중목욕탕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운영비 지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용객을 유도해야 한다. 한 예로, 강원도 양양군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에게 대중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 차량 지원을 통해 목욕 소외 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월 1~2회 제공되며,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해 노년층의 목욕을 돕는다. 보은군 역시 이와 같은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읍내 대중목욕탕과 면 단위 작은목욕탕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중목욕탕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상업 시설의 쇠퇴가 아니다. 이는 지역 사회의 중요한 생활 인프라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지방 소멸의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대중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서, 주민들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일상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된 지역에서는 목욕탕이 외로움을 달래고,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
보은군의 한 주민은 "목욕탕은 나에게 휴식의 공간이다. 만약 목욕탕이 없어진다면 휴식할 곳을 잃어버릴 것 같다"며 목욕탕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단순히 한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목욕탕이 사라지며 경험하는 공통된 문제이다.
대중목욕탕은 단순히 위생을 위한 공간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휴식과 교류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대중목욕탕의 폐업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목욕탕과 작은목욕탕이 공존할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