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의 한장면/사진=구글
지난 3일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숀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가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번 시상식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극장 중심의 영화 감상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화되었고, 둘째, 독립영화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으며, 셋째,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2020년 ‘기생충’ 수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숀 베이커 감독은 영화의 본질적인 가치를 극장에서 찾는다. 그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당시 “핸드폰을 보며 반만 집중한 채 영화를 보는 것은 진정한 감상이 아니다”라며 “극장에서의 공동 경험이야말로 영화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분열된 세상에서 공동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사라진 극장들을 언급하며 영화계가 극장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베이커 감독의 주장은 아카데미의 방향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아카데미는 이번 시상식을 통해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극장이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 공간임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숀 베이커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으며, 그의 대표작 ‘탠저린’(2015)은 단 1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된 초저예산 영화였다. ‘아노라’ 역시 600만 달러(약 90억 원) 수준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작은 영화다.
또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루탈리스트’ 역시 1,000만 달러(약 150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였다. 후보작 중에서도 ‘에밀리아 페레즈’, ‘콘클라베’ 등 다수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독립영화가 할리우드 주류 시장에서 점점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카데미는 또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에 주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정책과 대조적으로, 아카데미는 이번에도 인도주의적 시선을 강조하는 작품들을 조명했다. 이는 2020년 ‘기생충’의 수상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아노라’는 성 노동자인 애니(우즈베키스탄 발음으로 아노라)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와 계급 문제를 조명한다. 그녀는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러시아 재벌의 아들과 계약 결혼을 하지만, 결국 버림받고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사회구조 속에서 소외된 계층의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숀 베이커 감독은 그의 전작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에서는 모텔에서 살아가는 저소득층 모녀의 이야기를, ‘탠저린’(2015)에서는 성 노동자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삶을 그렸다. 그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조명하면서도 과장된 비극성을 부여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특성은 ‘아노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영화가 지나치게 사회구조적 이론으로 흐르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한다.
올해 아카데미는 극장 중심의 영화 감상을 강조하고, 독립영화의 가치를 인정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흐름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영화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극장의 회복,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 증대,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의 강세는 향후 영화 시장의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