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마트
한때 식품업계의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았던 밀키트(Meal Kit) 산업이 성장 둔화와 수익성 악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급성장했던 밀키트 시장은 팬데믹 종료 이후 소비 트렌드 변화와 고질적인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며, 최근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사업을 접거나 재편에 나서는 등 '밀키트의 몰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밀키트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 전후 외식이 어려운 상황에서 간편하고 품질 높은 식사를 원하는 수요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18년 345억 원에서 2023년 약 3,8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팬데믹 종료와 함께 외식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서 밀키트 시장의 성장세는 급격히 꺾였다. 2025년까지 7,000억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시장 규모는 현재 4,000억 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된 상태다.
대표적인 밀키트 전문 기업 프레시지는 2016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누적 적자 3,304억 원에 이르는 등 심각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매출 역시 2022년 5,300억 원에서 2023년 3,306억 원으로 34% 감소했다.
CJ제일제당과 GS리테일 등 대기업들도 밀키트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전담팀을 해체하는 등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CJ는 2024년 7월 밀키트 브랜드 ‘쿡킷’의 운영을 종료했고, GS리테일은 밀키트 브랜드 ‘심플리쿡’을 담당하던 전담팀을 해체했다.
밀키트가 위기를 맞은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성비 부족'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의 2024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밀키트 구매를 줄인 1순위 이유는 ‘비싼 가격’이었다. 이어 ‘영양 성분 부족’, ‘과도한 포장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가 꼽혔다.
밀키트는 간편식보다 손이 많이 가고 가격도 높지만, 그만큼의 만족도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소비자들의 재구매율도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유통기한이 짧고, 보관이 불편하며, 조리 후에도 설거지와 쓰레기 처리 부담이 크다는 점도 단점으로 작용한다.
HMR(가정간편식) 시장의 급성장도 밀키트의 설 자리를 더욱 좁히고 있다. 냉동돈가스나 만두 같은 HMR 제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보관이 용이한 데다, 최근 품질도 크게 향상되었다. 반면 밀키트는 신선 재료를 개별 포장해 판매하는 구조상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고, 메뉴의 다양성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식 시장은 단순한 끼니 해결 수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으며, 개성 있는 음식점과 배달 서비스의 확산은 밀키트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밀키트 산업은 한국 외 국가,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미국은 배달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고 외식 비용이 높아 밀키트의 효용성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배달 플랫폼이 잘 갖춰져 있고, 반찬가게나 편의점 등 간편식 대체재가 풍부해 밀키트가 자리잡기 어려운 구조다.
현재 한국의 밀키트 시장은 ‘망했다’고 단언할 단계는 아니지만, 성장 한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불만으로 꼽는 요소들—가격, 품질, 포장—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시장의 추가 확대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밀키트는 요리에 관심은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지만, 이들도 가격과 편의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때 식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던 밀키트 산업이 재도약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